A A
지금 에린에는 밀레시안 님이 주인공인 19금 팬픽션이 대 유행

 

 

세상에 망측해라!

 

 

 




팔락 팔락...

팔락...



볕 좋은 오후의 성소... 손꼽아 기다리던 알반 엘베드 첫째 날부터 힐드는 사랑스러운 애인을 앞에 두고 아 겨울까지 얼마나 남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음

고 사랑스러운 애인께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시느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흡사 개판 쳐놓은 여름방학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는데요

손에 들어온 책은 닿기도 싫다는 듯이 느슨하게 겹쳐쥔 손은 그대로 둔 채로 적당한 위치에 동실동실 떠올린 책에만 빤한 시선을 두고 있었음

드문드문 뭔 내용을 봤는지 양손에 핏대가 서는 모양새가 눈에 들어와서... 페이지가 팔락팔락 소리를 내면서 넘어갈 때마다 힐드는 애꿎은 눈썹만 북북 긁다가 결국 한 걸음 떼서 둥둥 떠 있는 책을 탁 소리나게 양손으로 덮었음



- 이, 이거 그만 봐.

- ……아직 몇 권 더 남았습니다.

- 아니, 이런 거 봐서 뭐 하게.



뭔 재미가 있다고. 내가 봤는데 무슨 시덥잖은 내용만 적혀 있더라. 어물거리면서 슬금슬금 책을 치워내는 힐드를 빤히 보고 있던 톨비쉬가 결국 손을 뻗어서 책을 쥐고 있는 힐드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음



- 왜 내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 …….



이딴 거 너한테 말해서 뭘 어쩔 수 있다고...

아닌 게 아니라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이계의 (잡)것들에 대한 일이나 세계의 운명이 어느 한 축으로 미끄러져 깨어지는 정도의 규모쯤은 되어야 테이블에 올릴 안건이 되지 않던가...

내가 여기저기 얼굴이 팔린 바람에 저잣거리서 좀 드러운 목적의 책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주신의 첫 번째 검이 아니라 주신의 첫 번째 채집용 단검한테도 솔직히 못 할 말이었음...

그리고 이런 건... 이런 건 창피하잖아... 속이 상한 게 뻔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톨비쉬를 올려다보던 힐드가 그게……. 하는 말이나 조금 우물거리다가 이마를 짚었음



- ……그,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왜 해.

- 하?



아니 그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니지 않나 싶고. 이 상황을 진짜 제발, 모면하고 싶었던 힐드가 책을 인벤토리에 휙 집어넣고서 양손으로 제 얼굴을 북북 문질렀음...

매양 반듯하던 얼굴이 드물게 일그러져서는 헛숨까지 토하고서 어디 한 번 이유를 말해보라는 듯이 보고 있는 톨비쉬의 시선이 머리 위로 빤하게 쏟아져서 결국 다시 변명을 시도함



- 네가 신경 쓸 법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 힐드, 난 당신 연인입니다.

- 아니, 그건…… 그건 알지. 아는데.

- 내가 이런 사실을 알터에게 전해 들어야 합니까?

- 알터가 말해 줬어?!



이 알반 기사단이라는 데는 아동의 모를 권리 같은 건 안 봐주는 건가? 늠름하게 자라서 이제 제법 소년 티를 벗은 단장님을 여전히 애 범주에 넣고 생각하던 힐드가 이번엔 진짜 뭐 됐다는 표정을 지음

이놈의 루나사 조라는 데는 그런 것쯤 눈에 들어오면 알아서 처리나 좀 해주잖고... 따박따박 단장한테 보고만 올린 건가? 아니 그러면 이걸 르웰린도 아나? 애 둘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전 단장한테 일러바친 거라고?

자기가 뭔 모르는 여인네들이랑 뒹군다는 내용의 책이 시중에 유통된 것도 착잡한데 그걸 동생같은 애들이 알고 있었다니, 더군다나 해결 방안까지 모색해주고 있었다니, 힐드는 딱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음



- 힐드.

- 아무튼 나는 알터도 진짜 몰랐으면 했는데 이런 거는…… 어차피 신경 안 쓰면 되는 문제지 않나…… 책이 좀 생겼기로서니 직접 피해를 본 것도 아닌데.



일러바친 거라기엔... 주밀레 악개답게 해당 사실을 빠르게 접한 알터가 기사단 차원에서 쇼부를 보려다가 아벨린에게 쿠사리를 거하게 먹고서 성소에 와서 '톨비쉬 님 도와주세요' 하고 직통 SOS를 꽂아버린 탓이었지만...

곤란한 기색이 역력해진 얼굴을 보니 더 다그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린 톨비쉬가 차분하게 지상에 발을 디뎠음

주절주절 그러니까 신경 좀 꺼 줘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하면서 습관적으로 발등을 내주려던 힐드가 고개를 들었음



- 갑시다.

- 어디를?!



얘 작정했구나. 예의 그 희고 빨간 평상복을 걸친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힐드는 진짜 경악함 야 내가 다른 게 아니라 데이트 좀 하자고 시간 내 달랄 때도 바쁩니다로 일관하더니 이런 데에는 시간 펑펑 내주고.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와중에 서슬이 퍼런 눈을 보아하니... 도저히 그러니까 난 괜찮아 / 쪽팔리니까 제발 모르는 척 해줘 / 피해 입은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이 모든 수가 통하지 않겠다는 걸 깨닫고 힐드가 인벤토리에서 어둑한 색의 로브를 하나 꺼냄



- 입고 가.

- ……로브를 두를 법한 날씨는 아닙니다만.

- 네 얼굴까지 팔리고 나면 저런 책이 열댓 권은 늘어날 것 같아서 그래…….







――――







줌류회는 몰라도 야시장은 이 시간엔 안 열릴걸. 최대한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미루고 싶었던 건지 힐드는 세계수 근처나 페스티아나 이멘 마하 근교나, 아무튼 몇 시간 안 남은 오후를 톨비쉬(옛날 모습)와 함께 보내며 얘를 어떻게 좀 달래 보려고 시도했음.

겸사겸사 이 참에 데이트도 좀 하고... 그래봐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아마 아까 그 책이겠지) 바득바득 열이 받아서는 해 질 녘 호숫가에서 물수제비 내기를 하자는 말에 원스트라이크로 스물다섯 번을 뜨는 모습을 보고는 완벽하게 포기했지만...



타라 외상 앞쪽에 즐비하던 가판대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시간에 맞추어 문게이트를 걸어나온 둘은 깜찍한 브라우니가 지켜보는 가게를 너덧 개쯤 돌아봤음

무슨 인꾸가 어쩌고 지정 색상 염색 앰플이 어쩌고, 저마다 다른 양한테서 캔 양털인데도 주머니에 집어넣기만 하면 귀여운 색으로 보인다는 비싼 주머니 구경을 하다 말고 톨비쉬가 힐드를 슬며시 잡아끌었음



- 이쪽이 아닌 모양이군요.

- (들켰다) 아니, 여기도 책 같은 건 꽤 있을 텐데.

- 그렇습니까?

- 으음.



가만 생각해보니까 선녀님 날개옷이 어쩌구 하는 마비노벨을 보여주면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겠다 싶은 생각을 한 힐드가 결국 마지막 보루까지 제 손으로 뭉개고서는 으응 다난들 매대는 아마 저쪽일 거야 하며 내성 안쪽으로 톨비쉬를 데리고 들어감

에린을 점령한 이방인들이 꾸린 자리와는 다르게 방금까지는 좀 부산스러운 분위기이긴 해도 어떻게, 다소 활기가 있는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 ……향락업, 인가요.

- 다난들 장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주로 서니까.



별 요상쩍은 향초를 피우기라도 하는 건지 드문드문 풍기는 들척지근한 향내며 어둑한 색의 불빛을 띄운 등이나 출입구가 당최 어디인지 모를 법한 가게의 뒷문, 술기운에 마구 웃는 남녀의 소리... 

아무래도 여긴 그런 꼴이지... 골목 꼬라지를 휘 둘러보다 머리를 긁적인 힐드가 괜히 손을 들어서 톨비쉬 머리에 두른 로브만 더 푸욱 씌워줌

지금 절 가릴 땝니까…… 하는 시선이 빤하게 닿았지만 모르는 척 아닌 척 로브에 달린 끈까지 반듯하게 묶어준 힐드가 소매 아래로 비죽 나온 손을 잡고 골목 안을 향해 걷기 시작했음



- …….



그런데 이거 진짜 괜찮나. 아까 보여준 책들도 꼭 확인해야겠다면서 말로 박박 긁어대길래 얼추... 멀쩡해 보였던 책들만 좀 꼽아다가 가져간 건데.

솔직히 자길 반찬 삼은 책을... 보여준다는 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뭐 그런 당연한 감정도 있었지만 힐드는 평소 톨비쉬가 보였던 면모를 보자면...

이런 장소에서 거래되는 책이나 그림 같은 것들을 보고 나면 남사스러워서 못 살겠다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이상의 반응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음...

그야 평소에 몸 섞는 일도 정상위가 아니면 마뜩찮아하는 게 눈에 보이는 데다가 샅에 입이라도 댈라치면 기함하는데 애인을 가져다가 이런저런 일에 버무려 놓은 책이라니 너무너무 끔찍해할 게 뻔했음



- 밀레시안 님, 저쪽인 것 같습니다.

- 음?



힐드가 애인 걱정으로 머리를 굴리느라 사위를 살피는 게 한 박자 늦은 와중에... 타인에게 알리지 않은 이름까지 불러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톨비쉬가 예전의 호칭으로 힐드를 불러다 한쪽에 있는 가판대를 가리킴

아이라가 파는 책들처럼 멀쩡하게 처리했다기엔 어쩐지 어설픈 모양새의 책들 하며, 가판대 한쪽을 가린 수상쩍은 검은 천이나 아마도 그림인 듯 둘둘 말린 종이들과...

결정적으로 얼굴을 하나도 가리지 않은 힐드를 쳐다보고서 기함하며 가판대를 정리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바로 여기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었음



- 저기요.

- 히익.

- 요새 나한테 인세도 안 주고, 내 이름만 걸어다가 돈 만진단 소리가 들리던데.

- 히익!



달달거릴 짓을 왜 해 그러게. 힐드가 얼굴이 새파래진 남자에게 뭐라고 더 말해야 이 짓거리를 그만둘지, 이걸 잡아다 족친다고 해결이 되는 일은 맞을지, 설령 족친다치면 강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할지 가늠하는 사이 톨비쉬가 매대에 있던 책 하나를 쓰윽 들더니 팔락팔락 펼쳐봄... 이걸 오늘 다 팔아치울 법한 양은 절대 아니고, 얼기설기 엮은 천으로 만든 가판대와는 다르게 이 책들을 어디서 공수라도 해 오는 것처럼 그득 쌓여 있는 꼴까지 샅샅이 훑음. 부녀자를 건드린단 저급한 내용에 한술 더 떠서 힐드라면 절대 안 할 대사까지 주절주절 말하고 있는 활자를 훑어본 톨비쉬가 곧바로 손에 들려 있던 책을 들어다 내다 버리듯이 매대 안쪽의 바닥에 던져버리고서 다음 책을 집어들었음



- 토, 아. 그거 일일이 살펴볼 필요는,

- 장부는 어디에 있습니까? 물건의 양이 꽤 되어 보이는데.

- 자, 장부?



몇 골드에 팔리는지는 왜? 어물어물 묻는 힐드에게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책을 들어다 살핀 톨비쉬가 또 그 책을 툭, 하고 가볍게 가게 주인의 발치에 내버리고서 대답을 종용하듯 쳐다봄... 장부를 꺼내기는커녕 이 깽판이 재미있다는 듯 근처 가게의 사람들이 시시덕대는 꼴을 보며 도망갈 구석을 찾던 가게 주인이 해명 비스무리한 말을 주절대기 시작함



- 어, 어차피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도 사방팔방에 이런 거 쓰는 작자들은 널렸다우.

- (지끈) 아저씨, 누가 이런 걸 사 가긴 해?

- 사 가기만 하는가! 백작님네도 후작님네도 몇 권씩 들이지.

- 그러니까 왜……?



진짜 왜??? 싶은 힐드와... 구매처가 귀한 집 마나님들 대상으로 한 유희거리 이상의, 정말로 단순히 모욕을 주기 위한 목적의 반 왕당파발일 수 있겠다는 사실까지 유추한 톨비쉬는...

다음 책을 집어들기 위해 뻗었던 손을 펼쳐서 그대로 셀레스티얼 스파이크를 갈겨버림



- 톨비쉬!!



얘가 정말로,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던 힐드... 새파란 빛줄기가 허공에서 새어나더니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주인은 쏙 빼고서 매대 위의 책과 뒷편에 쌓여 있는 종이 뭉치가 있는 쪽으로만 모여다 펑! 펑! 소리를 내며 터졌음

한방기보단 공격을 수월히 하기 위해 적을 속박하는 용도의 스킬이었지만... 상대를 골라 잡아 틱댐을 넣기에는 그만이었기 때문에 미처 타지 못한 책에까지 빛줄기가 옮겨붙어 자잘한 소리가 계속해서 났음

종이며 양피지 따위가 타들어가며 나는 매캐한 냄새와 산발적인 폭발로 인해 주변이 수런거리는 소리로 가득차고, 너머에서는 근위병을 부르는 소리와... 아 이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지 생각하는 힐드...

그리고 톨비쉬는 봐줄 생각이 없는지 타고 남은 책들로 엉망이 된 매대를 부서트릴 기세로 주먹을 내리치고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줌



- 장부, 어디에 있습니까?







――――









난데없이 다난의 가게를 상대로 테러를 일으키고 만 꼴이 된 에린의 영웅... 반쯤 혼절한 가게 주인을 근위대에 넘긴 힐드는 익히 얼굴을 아는 병사들이 조사가 필요하니 함께 가 달라는 말보다 그럴 만한 일이 있으셨나보다고,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경례하고 멀어지는 모습을 조금 착잡하게 바라봤음... 같은 왕성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도 누구는 나를 저렇게 믿어주고 누구는 나를... 정말 원초적인 방식까지 써 가며 짓밟고 싶어 하는구나. 근데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던가... 한숨을 푹 내쉰 힐드가 자리를 피하고 싶은 듯 앞서 걷는 톨비쉬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랐음



- 예상하건대, 이런 저급한 수를 꾀하는 것은 법황파보다는 귀족파에 속한 자들일 겁니다.

- 응.

- 르웰린과 함께 움직이세요. 신시엘라크의 힘을 이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 응…….



보기 드문 명령조. 평소라면 르웰린과 함께 움직이는 쪽을 권하고 싶다며 넌지시 말했을 톨비쉬가... 화가 난 게 명백한 투로 말을 꺼내 오는 모습을 보니 힐드는 이제 진짜 마음이 불편해졌음... 단순한 해프닝인 줄만 알았던 일에 무슨 덩이줄기 삼형제가 이렇게까지 꼬여 있을 일인가. 더구나 정말로 아직 애인 에레원을 적대시하기 위한 패로 자기 덜미가, 이런 방식으로 잡혀 나온 일이라니. 정말로 정치판 놀음이라는 건 싫다는 생각까지...

한 차례 일이 있어서인가 야시장 근처는 그새 조용해져 있었음. 또 생각에 빠졌는지 아무 말도 않고 앞장서 걷는 톨비쉬가 가로등 불빛이 닿는 아래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힐드는 뒤에서 로브 두른 몸을 덥석 껴안았음



- ……!

- 톨비쉬, 화났어?

- 그런 것, 아닙니다.



아니기는……. 웅얼거리며 이제는 금장이 달려 있지 않은 게 어색하기까지 한 어깨에 눈가를 꾹 누르고 살살 비비댔음



- 미안, 난 진짜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 ……힐드. 당신은, 당신의 뜻이나 행동이 어떤 반향과 파문을 일으키는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났네 뭐... 이걸 어떻게 달래주지, 심란한 와중에 엘베드의 첫 날을 이런 기억으로 보내버린 게 다소 억울하기도 했던 힐드는 허리에 감은 팔에만 더 꼬옥 힘을 주고서 어깨를 늘어트림. 이렇게 땅을 밟아주는 일이 정말로 드문데. 농장에 쏙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먹이고 요리도 하고, 바보같이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가만 생각하고 있던 힐드의 품에서 자길 바짝 껴안은 팔을 슬쩍 풀어낸 톨비쉬가 몸을 돌려서 힐드를 마주봄



- 그리고, 별일이 아닌 일도 내게 말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줄 필요가 있고요.

- 어?

- 이 땅에 다다를 재액과, 어긋난 균형에 대한 것과, 운명이 드리우는 그림자, 이변, ……그런 것만이 아니라.

- …….



아, 이건...

돌아선 연인을 다시 껴안지도 못하고 힐드가 그 자리에 서서 굳어버림... 투정... 투정? 투정조차 못 되는 이 말이 얼마나 간지럽고 또 미안한지... 빈손을 쥐었다, 펼쳤다, 할 말을 고르지도 못하고서 입술만 달싹이던 힐드가 여즉 로브를 둘러 써 새카맣게 그림자가 진 톨비쉬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 봤음... 이미 한 차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불러버린 이름을 떠올리면서 이미 엎지른 물에 실수 하나만 덧그릴 요량해서, 지금 당장 이 로브를 벗겨다가 매양 감추기만 하는 속 여린 얼굴을 들여다볼까 싶다가도...



- 미안…….



속이 상했단 말도 표정도 명백해서... 지금 다시 멋대로 굴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얘가 이런 표정을 지어 줄 때마다 속에 든 게 따끔따끔하고 무겁고 아프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걸로... 지금 순간이 실감난다는 생각을 좀 하면서... 로브를 벗기는 대신에 틈으로 손을 밀어넣은 힐드가 뺨을 쥐고 고개를 숙여서 입 맞췄음





Copyright 2024. GRAVITY all rights reserved